<사랑은 낙엽을 타고>. 잔잔한 여운이 있는 영화였다. 감독의 유머들은 솔직히 웃기진 않았지만 귀엽고 매력있다. 연락처 종이를 소중히 지갑에 넣고, 다시 재킷 주머니에 단단히 넣어놓는 장면은 가장 좋았다. 황량한 사회에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이들의 간지러운 상호작용이 생각보다 좋았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모두 소시민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버거운 이들이다. 나 또한 그렇다. 영화를 보며 위안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보면서 아주 편안했다.
내가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인터넷 카페에서 가난한 안사가 카운터 앞에서 "비싸네요"라고 하자마자 카페 사장이 기분 상했다고 하는 씬이었다. 그 부분의 프레임 하나하나가 일주일이 넘은 지금에도 눈에 박혀있다. 10유로면 상당히 비싼 값이다. 그러나 그걸 바로 점원에게 말한다는 것은 확실히 무례한 짓이다. 여기서 바로 기분 상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점원의 행동이 부러웠다. 나는 그동안 알바를 해 오며 무례한 이들을 많이 만나왔다. 기분이 상하는 일이 너무 잦았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났다. 안사의 행동은 그저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나온 해프닝으로 이해하고 넘길 수 있다. 안사의 말을 들었을 때의 심리적인 타격은 누구에게나 크지 않은 정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대학교에 입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해 오며 겪어온 일들은 이를 초월하며, 나를 괴롭게 했다. 이 씬을 보는 순간 내가 직원으로 일하며 받은 상처가 단순간에 떠오르며 스크린 앞에서 잠시 눈물이 고였다.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 오며 고객에게 <상처 받았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없었다. 그저 죄송하다는 말을 반복해야 했을 뿐이었다. 죄송하다는 말로 부족할 때는 이것저것의 이유를 대면서 궁지에 내몰리곤 했다. 우리나라에서 기분 상하는 것에 단적으로 "상처 받았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 직원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해보면 우울해진다. 나랑 또래인 대학생들 중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은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혼자 억울해서 카운터 앞에서 눈물까지 고이던 흐린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영화의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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